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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영.익명의 몸, 분열된 시간 

 

- ‘현대인의 실존 풍경’-

 

 

유아영의 회화는 인물을 그리지만, 끝내 인물에 도달하지 않는다. 얼굴은 비워지고, 시선은 사라지며, 몸은 배경 속으로 밀려난다.

(Face to Face.2013)에서 시작된 그의 인물은 이미 ‘대면’의 불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인물은 화면 정면에 위치하지만얼굴은 지워져 있고, 정체성은 해체된 채 물감의 흐름으로만 존재한다. 이는 초상화의 붕괴이자, 현대 주체의 인식 불가능성에대한 회화적 선언이다.

 

이러한 태도는 (An Ordinary .2015)(Existence, Fireflies)에 이르러 더욱 극적으로 확장된다. 이 작품들에서 인물은 일상 속에 서 있으나 결코 일상에 소속되지 않는다. 얼굴은 반쪽만 존재하거나 분할되고, 신체는 빛과 물질 사이에서 분열된다. 유아영은 인물을 통해 개인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특정인이 아닌 의식의 형상”이라는 자신의 작업노트처럼, 인물을 시대가 만들어낸심리적 껍질로 제시한다.

 

이 지점에서 그의 회화는 독일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 특히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나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신체 파괴적 회화와 미묘한 접점을 갖지만, 유아영의 인물은 폭력보다 감정의 소멸과 침묵에 더 가까운 비극성을 지닌다.

 

-디지털 이후(post-digital)의 인물화-

 

유아영 작업의 핵심은 이미지의 채집이다. ‘직접’이 아니라 ‘허공에 떠도는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투망질 하였다. 그의 인물들은거리에서 촬영된 사진이기도 하지만,  이미지 파편을 회화로 변환한 결과물이다. 이는 더 이상 “대상을 보고 그린다”는 근대적재현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이미지를 다시 이미지로 번역하는 2차적 시선의 회화를 수행한다.

 

(던져진:Thrown.2016)은 이러한 태도를 극도로 압축한 작품이다. 수백 개의 사물 이미지가 벽처럼 쌓인 배경 앞에 선 인물은정보의 과잉 속에서 고립된 주체를 상징한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한 ‘상징 권력’은 이 작품에서 이미지의물량 자체로 가시화된다. 인간은 이미지를 소비하지만, 동시에 이미지에 의해 지배당한다.

 

(Pig Earth II와  Werden V 2018~2020)는 인물이 자연과 접속하는 순간을 다루지만, 이 자연은 더 이상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 인물 아래에는 흙 대신 물감의 덩어리가 쌓여 있고, 자연은 현실이 아니라 매체화된 풍경으로 존재한다. 이 장면은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한 ‘되기(becoming)’ 개념과 맞닿는다. 인간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타자·자연·기계와 얽히며 변화하는 과정적 존재라는 것이다.

 

 

-실존의 감각회화-

 

유아영 회화의 실존적 깊이가 가장 응축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저 너머에:Beyond)와 (Les Misérables.2025)에서 인물은 더이상 사회적 역할조차 수행하지 않는다. 들판을 걷는 작은 인간 형상, 화면 하단에 고개만 남긴 인물은 세계 앞에서 극도로 축소된 존재이다.

 

특히 (저 너머에)는 인물보다 풍경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인물은 마치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의식의 잔여물처럼 남아 있다. 이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세계-내-존재(Dasein)’의 고독한 조건을 회화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며, 세계는 언제나 인간보다 크다.

 

 (Les Misérables.2025)는 제목 그대로 ‘비참한 사람들’이지만, 장발장의 서사적 비극이 아니라 현대인의 구조적 소외를 다룬다. 광활한 하늘 아래 홀로 서 있는 인물은 사회적 약자이기 이전에, 존재론적으로 고립된 인간이다. 이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부조리 철학, 곧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끝내 의미에 닿지 못하는 인간의 조건”을 연상시킨다.

 

 

-회화적 물성의 윤리와 ‘흐름’-

 

유아영은 유화(oil), 과슈(gouache), 수성유(water-based oil)를 병용하며 하나의 화면 안에 서로 다른 시간성을 가진 물질들을 충돌시킨다. 유화는 느리고 무겁고, 과슈는 즉물적이며, 수성유는 불안정하다. 이 이질적인 재료의 공존은 그의 주제와 정확히 대응한다. 안정된 주체는 없고, 모든 것은 흐르고 번지고 침식된다.

 

그의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물감의 흘러내림, 지워진 얼굴, 번진 경계는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현대인의 기억·정체성·감정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드러내는 회화적 장치이다. 이는 일본 모노하 이후의 물성 회화와도, 서구의 신표현주의와도교차하지만, 정작 그의 회화는 한국적 도시 현실 속에서 탄생한 감정 노동의 회화라는 점에서 독자적이다.

 

 

-사회비판이 아닌 ‘심리비판’-

 

유아영의 회화는 사회 고발적 리얼리즘과는 거리를 둔다. 그는 구조를 해부하지 않고, 구조 속에 놓인 개인의 심리적 위치를 응시한다. 다시 말해 그의 회화는 ‘사회비판’이 아니라 ‘심리비판’에 가깝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인물화가 보여준 직접적 정치성이나 리얼리즘과도 분명히 구분된다.

 

그의 인물들은 시위를 하지도, 저항의 몸짓을 취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멍하니 서 있고, 고개를 떨군 채 걷고, 바람과 이미지 사이에서 침묵한다. 이 침묵이야말로 유아영 회화의 가장 정치적인 지점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오히려 현대 사회가개인에게 강요한 침묵의 구조를 시각화한다.

 

- ‘지금 여기의 인간’을 기록-

 

유아영은 인물을 그리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더 이상 주체가 되기 어려운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의 인물은 실명을 갖지 않고, 얼굴은 지워지며, 몸은 풍경 속으로 흡수된다. 네트워크 이미지에서 출발한 이 인물들은 다시 회화라는 물질로 환원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대면(face to face)’하고 있다. 동시대 실존 회화의 드문 성취라 할 수 있다. 그는 사회를 직접적으로 고발하지않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부 균열을 가장 정직하게 기록하는 화가다.

 

 

금보성 (금보성 아트센터 관장,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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