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3년 가을부터, 거리의 인물과 네트워크상을 떠도는 인물 이미지를 대상으로 일련의 회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 회화 작업을 <갈색 형상>연작이라 한다. <갈색 형상>연작은 인물화이지만, 특정인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의식의 형상이 이미지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현대인들은 공공성 대 사적 친밀성이 부딪치는 광장과도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따로 그리고 같이, 서로를 마주하며 개인이자 대중으로 살아간다. 나는 카메라로 볼거리를 바라보는 거리의 사람들과 그들이 바라보는 것들을 담고 그것을 디지털의 이미지와 혼성하거나 그대로 프린터로 출력한 후 회화 작업으로 옮긴다. 내가 거리의 행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서 나오는 그 자연스러움에서 내가 채집하려는 현시대와 특정 지역의 고유한 몸짓언어가 포착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개인적인 이미지의 사용을 주저하는 까닭은 시대의 일반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본질적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로서, 개인적 이미지로 인해 나 자신의 감정에 침잠하는 것에서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자 함이다.
한편, <갈색 형상>연작은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인물 이미지들을 주요한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 파편들은 물리적 공간에서 물리적 장소가 없는 디지털 공간으로 현대인의 삶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동시대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새로운 타입의 광장과도 같이 볼거리가 넘치는 이 네트워크 상의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이미지들은 나에게는 심리적으로 먼 존재로서 이를 통해 내 개인적 삶의 틀이 만드는 사회적 제약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이미지를 대하며 사고와 표현의 자유를 가지게 된다. 네트워크상에 떠도는 이미지 파편들은 사진에서 인물을 추출해 배경을 제거하고 얼굴을 확대했다가 인물의 포즈의 뉘앙스 그리고 인물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으로 불확실성의 표현을 이어간다.
나는 이 채집한 이미지의 요소들을 심리적 정황에 따라서 적절히 가감하고 배치하면서 인물화이지만 풍경화처럼 응시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의 이미지를 생동감 있게 포착해 흘러내리는 물감과 거친 갈필, 우발적인 붓 터치로 표현한다. <갈색 형상>연작은 네트워크를 떠도는 공허한 이미지들과 거리에서 채집한 인물들을 매개해서 현대인이 마주하는 불안과 고독감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생의 감각을 담고 있다.
<갈색 형상>연작은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화 작가들에 비하여 지역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분석하지 않는다. 사회의 구조적인 이야기보다 개인의 심리와 지금 이곳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현대인의 위치를 드러낸다. 이 연작을 통해서 디지털과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시간과 공간에서 비롯된 심리적 정황을 시각 화 시키고 ‘지금 여기’, 즉 현실적인 삶의 감각과 상황들을 말하고자 한다.
2025년 6월
유아영